나 정말 가벼웠으면 좋겠다
나비처럼, 딱새의 고운 깃털처럼 가벼워져
모든 길 위를 소리없이 날아다녔으면 좋겠다
내 안에 뭐가 있기에
나는 이렇게 무거운가
버릴 것 다 버리고 나면
잊을 것 다 잊고 나면
나 가벼워질까
아무 때나 혼자 길을 나설 수 있을까
사는 게 고단하다
내가 무겁기 때문이다
내가 한 걸음 내딛으면 세상은 두 걸음 달아난다
부지런히 달려가도 따라잡지 못한다
다 내가 무겁기 때문이다
나 정말 가벼웠으면 좋겠다
안개처럼, 바람의 낮은 노래처럼 가벼워져
길이 끝나는 데까지 가 봤으면 좋겠다
백창우 시집<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중에서
삶의 무게는 욕심과 비례하여 늘어나는것 같습니다.
욕심을 버리면 이 허약한 두 다리로도 너끈히 삶을 버텨 나갈텐데 말입니다.
정말 욕심이라는 무게는 대단합니다.
마치 중력처럼 내가 느끼지 못하는 불가항력의 힘처럼 말입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벌써 3번째 감상이었습니다. 내가 386세대라서 그런지 그 시대와 어울리는 80년대식 감성에 잘 맞는 영화인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누구에게나 꿈이 있고 한때 사랑에 목말라하고 세상에 부르짖고 싶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우리 세대는 우리의 정체성이 확립될 무렵의 시대적 상황이 참 어설프기 짝이 없었지요. 군부독재 말기에 우린 대학에 가던 , 사회에 발을 내딛던 자기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세상 더럽다 말만 들었지 잘 몰랐구요. "돈벌어먹기가 뭐 그리 어렵겠어?" 하고 떠벌리기에도 우린 너무 여렸던것 같습니다. 그렇게 뿔뿔이 자기생활에 빠져 지내면서 스스로 혹은 세상이 우리를 달라지게 만들었던거지요. 이 영화는 이런 맥락으로 감상하면 훨씬 더 가슴에 와 닿으리라 생각됩니다. 마음먹은대로 되지않음, 달라지 사람들, 생활에 맡겨진 삶, 끝없는 굴레, 뭐 이런 칙칙함이 맴도는 영화이지만 나름대로 희망을 찾아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 중에 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놈 너밖에 없잖아. 그렇게 하고 싶어하던 음악 하고 사니까 행복하냐구...진짜루 궁금해서 그래... 행복하냐....?” -와이키키 브라더스 중- |
사회복지는 혼자라서, 나이가 들어서, 여자라서, 심신이 허약해서, 돈이 없어서, 두메산골에 살아서, 동성애자라서...차별받지않고 평균적인 삶에서 도태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어찌보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평등사상과 일맥 상통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행복과 안녕은 그냥 바이블같은 것이라면 사회복지는 그것을 실천하는 매뉴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회복지는 다분히 인위적이고 계획적이고 사려깊고 가끔은 손해보는 장사가 되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손해보는 장사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그 목적성만 인식된다면 적어도 망하지않고 영위할수 있는 수단적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지출이 OECD국가중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건 사회적합의와 인식이 그만큼 뒤떨어져 손해보는 장사라는 생각들이 강한 것 같습니다. 사회복지가 앞으로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신성장동력이자 블루오션이 된다면 어떨까요? 일자리를 나누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좁혀지고, 쪽방촌에도 한겨울 굴뚝에서 연기가 무럭무럭 나오고, 마을마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협동정신이 발휘된다면 참 아름답지 않나요... 각기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지만 다 같이 대한민국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살고 있다면 적어도 다르게 생겨났다고 다른 취급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정의라는 명제와도 맞닿아있습니다. 정의롭지못한 사회는 결코 복지스럽지도 못할것이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양극화의 심화라는 최악의 불평등에 처해있습니다. 차라리 다같이 못산다면 이보다 행복지수가 높을지도 모르겠지요. 행복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기에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인 것 같습니다.
사회복지는 그러하여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되 정의롭고 투자하기에 아깝지않은 블루오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득권을 누리려는 사람들, 100개에서 한 개가 모자란 99개를 가진 사람들이 아닌 한 개를 나누어 두 개를 이루고 숲을 이루는 생태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생태계에서는 멸종이란게 있지 않을테니까요. 즉 개인적인 한계 때문에 학업을 접고, 취업에 불평등을 받고, 국가정책의 허점으로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들이 최소화되어야만 진정한 복지가 이루어지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복지의 재정이 국민세금과 절대적인 연관이 있지만 그것만 탓할 것이 아니라, 과도한 경쟁과 신자유주의적 시장체제로부터 오는 폐해를 줄이고, 복지전달체계 혁신을 통해 복지수요의 만족도와 체감도를 높이는 것도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사회복지의 사전적 의미는 훌륭합니다. 국민의 생활 안정 및 교육·직업·의료 등의 보장을 포함하는 복지를 추구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지요. 그런데 제도적이고 정책적이고 정치적이라는 점 때문에 선거철에만 복지국가로 한껏 성장해가는 느낌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아마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2년에 한번 뽑는다면 빠른 시일 안에 복지국가로 거듭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앞으로 국가정책이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라도 튼튼하게 꾸려 더 이상 안타가운 삶들이 이 사회에서 도태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냥 니가 좋다라고 말하면 될 것을
어젯밤 꿈에 어떤 사람이 나타났는데 울뻔했다는둥
별로이지만 내가 워낙 사람이 좋아서라는둥
둥둥 떠다니는 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