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숲에서 길을 찾다》 #1 독서는 취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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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어에는 시간 개념을 나타내는 두 단어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연속적·물리적인 시간 개념으로, 태초의 신 크로노스(Chronos)다. 다른 하나는 제우스의 막내둥이 카이로스(Kairos)로, 기회 혹은 때를 의미한다. 카이로스는 손에 저울을 들고 있고 발에도 날개가 달려 있으며 앞머리는 풍성하지만 뒷머리는 대머리인 우스꽝스런 모습이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도망간다는 의미다.

    뒷머리가 벗겨지고 앞머리밖에 없는 카이로스의 모습은 ‘기회는 빨리 포착하지 않으면 다시 잡을 수 없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기회를 잡을 수 없다.

     크로노스/카이로스 개념은 일상에서 수동적/능동적 시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수업과 업무 등 어쩔 수 없이 소극적·수동적으로 흘려보내는 시간과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는 적극적·능동적 시간은 다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의 즐거움》에서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라고 할 만큼 몰입한 시간이 바로 행복의 척도라고 말한다. 돈, 권력, 명예를 향해 달리는 사람보다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성공한 인생이라는 주장이다.

     자기애, 잡다한 열정, 소심함, 불만족한 정신. 이런 것들은 독서의 주적으로, 언제나 우리 안에서 비롯된다. 그 수가 많음을, 상당히 흉물스러운 것임을 우리는 보았다. 
    서글픈 노년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독서의 주적에 맞서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책은 우리에게 남을 마지막 친구이며, 
    우리를 속이지도, 우리의 늙음을 
    나무라지도 않기 때문에.
    - 에밀 파게, 《단단한 독서》

         
    에밀 파게는 1912년에 쓴 책에서 독서의 적을 언급했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 SNS 등 ‘독서의 주적’은 너무 많다. 책을 읽기가 더 힘든 시대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크로노스가 아니라 카이로스의 시간을 책에서 찾아야한다. 시간에 쫓겨 24시간을 온통 크로노스로 채우는 사람에게 기회는 오지 않는다. 아무리 카이로스의 뒤통수를 움켜잡으려고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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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불석권(手不釋卷).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라는 이 사자성어는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열에 아홉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야말로 ‘수불석폰’의 시대다. 책을 읽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수불석권’으로 시작해 보자. 잠잘 때도 머리맡에 책을 두고, 산책을 나가면서도 책 한 권을 들고 가자. 책을 가지고 다니는 습관을 들이면 자투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잠이 오지 않을 때 등 틈나는 모든 시간이 책읽는 시간이다. 시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책읽기에도 목표가 필요하다. ‘남는 시간에 조금씩’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권’, ‘하루에 50쪽 읽기’ 등 자신과 약속을 정하면 규칙적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책을 읽다가 슬그머니 텔레비전을 켜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실시간 검색어를 클릭하는 대신 매일 정해 놓은 분량의 책장을 꾸준히 넘긴다면 미래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빛날 것이다.
    두세 권의 책을 같이 읽을 수도 있다. 두껍고 어려운 책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읽고, 짧은 호흡의 책이나 재미있고 가벼운 책은 틈날 때 읽으면 된다. 데스크톱 컴퓨터와 노트북 컴퓨터가 다르듯이 집에서 읽는 책과 들고 다니는 책을 따로 정해도 좋다. 책을 읽을 수 없는 장소는 거의 없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어디에나 어울리는 일이 책읽기 말고 또 있을까?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책이 있어야 책읽기 습관이 몸에 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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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원 글씨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지원은 〈원사(原士)〉에서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맛이 좋아도 많이 먹으면 해가 생긴다. 많을수록 더욱 유익하고, 오래되어도 폐단이 없는 것은 독서뿐이다.”라고 했다. 뭐든 지나치면 해롭다고 말하지만 책을 지나치게 읽어 탈이 나는 경우는 드물다. 책읽기는 취미가 아니다. 취미는 시간이 남아 어쩔 줄 모를때 하는 일이다.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책 읽는 습관을 길러 보자.

    독서를 ‘대단한 행위’라든가 
    ‘숭고한 작업’이라는 식으로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보다는 매일 일상생활에서 하는 
    다른 행동들처럼 그냥 가볍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아요. 
    예를 들어, 
    독서란 어떤 옷을 골라 
    입는 것과 비슷합니다. 
    독서는 패션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죠. 
    좀 더 쉽게 말하자면 
    매일 갈아입는 옷에 가깝습니다.
    - 마쓰오카 세이고, 《독서의 신》

        
    책읽기 습관은 아침에 일어나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것과 같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라는 안중근의 말은 언제나 유효하다. 음식이 육체적인 존재로서 나를 살아가게 한다면, 책은 정신적인 나를 만들어 가는 도구다.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습관처럼 책을 읽다 보면 인생이 통째로 바뀐다.
    지금까지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았다. 책을 읽는 목적에 따라 그 방법은 수없이 많다. 고수들의 가르침은 도처에 널려 있다. 다만 그 가르침이 나에게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책읽기 기술은 책을 읽는 동안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처음에는 안내와 충고가 필요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방법이 생긴다. 그렇게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눈앞에 지나가는 카이로스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면 그만이다. 이제 책장을 덮어도 될까? 아직 책읽기는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무얼 하면 좋을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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