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 살 때 빨간색 바지를 입는 현지 남자들을 보면서 엉겁결에 산 바지가 한 벌 있기는 했다. 하지만 남자들이 빨간 바지를 입지 않는 뉴욕에 돌아온 뒤로 그 바지는 서랍장 안에서 잠자고 있다. 마드리드에서는 아무렇지도 않던 옷이 1991년경의 미국에서는 너무나 전위적인 차림으로 보였다. 하지만 아이에게 자세히는 설명하지 않았다.
“하나 사지 그래?”
“그래야 할까?”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일 좋아하는 숫자는 뭐야?”
할 말이 없었다. “글쎄,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다음에야 “8인가?”라고 뜨뜻미지근하게 답하면서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애썼다. 아마도 어릴 때 언제나 ‘8자’가 쓰기에 재미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난 6이야.” 딸이 말했다.
“왜?”
“몰라, 그냥 좋아.” 아이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딸아이와의 짧은 대화 속에는 개인적인 취향에 관한 중요한 과학적 원칙이 다섯 개 이상 담겨 있다. 첫째는 카테고리로 정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파란색을 좋아하지만 파란 자동차는 좋아하지 않는다(대체 왜일까?). 오렌지 주스를 좋아하지만 주황색 칵테일은 싫어하기도 한다.
둘째는 언제나 때에 따라 바뀐다는 점이다. 스페인에서는 매력적이었던 바지가 뉴욕에서는 입지 못할 옷이 되기도 한다. 여행을 갔다가 기념품으로 사온 물건(에스파드류나 다채로운 색깔의 담요)이 그곳에서는 유쾌했지만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망명인처럼 옷장 안을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더운 여름에는 검은 자동차를 구매하는 사람이 줄고 수영장이 있는 집의 가격이 오른다.
셋째는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게 아니라 선택되고는 한다는 점이다. 가장 좋아하는 숫자를 물었을 때 내 머릿속에는 한 자리 숫자들이 떠다녔고 나는 좋아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숫자를 골랐다.
넷째는 비교 대상이라는 점이다. 말을 배우기 전인 아기조차 같은 취향을 지닌 사람에게 더 끌린다. 흥미롭고도 뛰어난 한 연구에서는 아기들에게 두 음식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이후 같은 음식을 ‘좋아하는’ 인형과 ‘싫어하는’ 인형을 보여주자 많은 아기가 같은 음식을 좋아한 인형을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짜증 나게도 취향은 타고나는 일이 드물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얼마나 많은 유전자를 공유하든 그 어떤 면에서도 부모와 똑같은 취향을 지니는 일은 드물다.
우리는 매일 다양한 방법으로 여기에 대해서 질문을 받는다. 어떤 노래가 나오면 라디오 채널을 바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어떤 페이스북 포스팅에는 ‘좋아요’를 누르고 어떤 것에는 누르지 않을까? 왜 다이어트 콜라 대신에 레모네이드를 선택할까? 이런 소소하고 평범한 선택이 모여서 우리 일상을 지배한다.
‘아침을 어떻게 주문할지’도 이런 문제 가운데 하나다. ‘달걀은 얼마나 익혀드릴까요? 빵은 흰 빵으로 하시겠습니까, 통밀로 하시겠습니까? 소시지와 베이컨 중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와 같은 별것 아닌 문제들이다. 중요하지 않은 듯하지만 잘못 선택하면 불쾌함을 느끼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호는 그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좀더 폭넓고 심오한 취향으로 발전한다. 예를 들어 ‘나는 컨트리 음악이 좋아’ ‘나는 프랑스어 발음이 마음에 들어’‘나는 SF 영화를 좋아해’ 같은 것들이다.
내 딸처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 평소와 달리 ‘가장 좋아하는 숫자’를 묻는 딸아이의 질문에서 학자들이 말하는 ‘강박장애’와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대단한 이론을 공부하지 않더라도 ‘가장 좋아하는 것’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손쉬운 방법이라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자신이 평범한지 독특한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내 딸은 새로운 친구를 설명할 때면 친구의 생일 다음에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을 알려준다.
사람들은 흔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취향은 설명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주로 타인의 취향이 믿기지 않을 때 이런 반응을 보인다. 그렇게 흔히 말하면서도 자신의 취향을 설명하기 어려워서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일은 드물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보다 더 진실한 감정이 있을까?
하지만 취향을 연구하다보면 그 결과가 놀랍다 못해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프랑스의 사회과학자 클라우디아 프리츠는 유명 바이올린 연주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조건 속에서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장인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악기에 대한 취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연구했다.
우연히 택시 뒷자리에서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 소리가 고대부터 전해 내려오다가 잃어버린 마법처럼 얼마나 애절하게 울리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누가 이런 명기를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새로운 바이올린 소리를 더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내가 낯설다Strangers to Ourselves》을 쓴 티모시 윌슨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스스로도 잘 모른다고 주장한다. 윌슨은 이런 행동의 원인이 대부분 ‘적응 무의식(적응하는데 필요한 기능을 축적한 결과)’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환상에 빠지려고’ 노력하며 이 환상 속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이유를 알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지닌 취향이 낯설다. 이제는 진실을 알아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취향’이라고 할 수 있는 음식부터 시작해보자.